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온 안토네스쿠 (문단 편집) == 전쟁 범죄 == 전쟁이 끝난 후 위젤 위원회의 추정에 따르면, 이온 안토네스쿠의 지배 하에 28만 명에서 38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했다고 한다. 당시 루마니아의 반유대주의의 분위기는 1941년 7월 8일의 부총리 겸 외무장관 미하이 안토네스쿠의 다음 발언에서 확인된다. 그는 국무회의에서 그의 동료 장관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들 중 몇몇은 나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베사라비아와 부코비나의 모든 유대인 일파를 강제로 이주시키는 데 찬성한다. 그들을 국경 밖으로 추방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우리 역사에서 완전한 인종 해방, 갱생된 민족의 재검증 그리고 우리 민족의 정화를 위한, 이보다 더 적당하고, 더 완벽하고, 더 자유로운 순간은 없었다. 이같은 역사적 기회를 이용하도록 하자. 만약 필요하다면, 기관총을 동원해서라도 말이다."[* 이후 궁정쿠데타 때 체포되어 이온 안토네스쿠와 함께 처형됐다.] 이온 안토네스쿠는 [[나치 독일]]의 요구로 약 4만 명의 유대인을 강제수용소로 보낸 혐의를 받았으며 이온 안토네스쿠 치하 루마니아의 반유대주의 정책은 [[나치 독일]] 다음 가는 잔인성을 보여주었다. 아니 어떤 점에서는 오히려 더 악독했다. 이같은 철저한 반유대주의를 실천하면서 안토네스쿠는 [[히틀러]]의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루마니아에 있던 75만 7천 명의 유대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학대받는 측에 속했다. 루마니아 정부는 히틀러를 따라서 천천히 반유대주의 정책을 실시했다. 1940년 8월부터 루마니아 정부와 안토네스쿠는 유대인들의 재산과 직업을 박탈하였고 그들을 강제 노동자로 만들었다. 1941년 1월에는 부쿠레슈티에서 170명의 유대인들이 학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학살은 [[독소전쟁]]이 시작되자 본격적으로 심해졌다. 루마니아인들은 독일의 소련 침략에서 온갖 학살을 저질렀는데 베사라비아에서 20만 명의 유대인들을 죽였다. 유대인들은 물이나 음식도 공급받지 못한 채 가축용 열차에 실렸는데, 일부는 벌거벗겨진 상태였으며, 나머지 옷이 있는 사람들도 신문으로 간신히 몸을 가릴 수 있는 정도였다. 남부 소련에서는 기동대와 함께 학살했던 루마니아군의 잔혹함은 독일군에게도 충격을 주었을 정도였다, 1941년 10월 23일 한 지뢰밭에서 루마니아군 본부 중대가 몰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유대인 대학살이 시작되었다. 루마니아군 본부 중대가 몰살당한 다음날 루마니아군은 네 개의 커다란 창고에 유대인들을 쑤셔넣은 다음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질러서 2만에서 3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들을 태워서 죽여 버렸다. 이 사건을 보고 크게 좋아했던 나치 독일은 루마니아군에게 베사라비아 지역을 맡겨서 이곳에서 21만 7757명의 유대인들을 학살하게 했다.[* 이들 중에 소련 출신이 13만 명, 루마니아 출신이 8만 7757명이였다고 한다.] 결국 루마니아인들은 독일인과 오스트리아인 다음으로 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했다..[* 아랫나라 [[불가리아]]가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 참여 요구와 압력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을 학살하지 않고 보호했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불가리아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을 따라 추축국에 참전하긴 했지만 자발적으로 히틀러의 요구를 따라 전쟁에 참전했던 루마니아, 헝가리 등 동부유럽의 다른 추축국 국가들과는 달리 추축국 합류도 히틀러의 반강제적 요구에 의해 이뤄진 것이었고, 전쟁 당시 불가리아군에서도 약탈과 강간, 학살 등을 각 부대들마다 자제, 단속하는 등 규율을 지켜 아예 점령지와 전선에서 전쟁범죄를 대놓고 저질렀던 나치 독일군이나 이탈리아군, 일본군, 루마니아군, 헝가리군 등 다른 추축국 군대들에 비하면 온건한 편이었다.] 그들은 구타와 고문, 강간도 일삼았는데 특히 장교들은 예쁜 유대인 소녀들을 뽑아다가 '''그들의 성기를 잘라낸 다음 난교 파티를 벌였을 정도였으며, '''또한 돈을 얻기 위해서 유대인들을 총살하고 난 후에 그 시체를 농부들에게 팔았으며, 농부들은 그들의 옷을 벗겨갔다. 그리고 루마니아군은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을 때는 유대인을 산 채로 팔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군사학교 학창 시절부터 친구였던 빌헬름 필데르만은 유대인이었다.[* 그래서 필데르만과 가족들은 예외로 살아남게 해줬다고 한다. 이 사람은 훗날 루마니아 유대인 공동체 지도자가 되었다.] 결국 이러한 극악무도하고 악랄한 루마니아군의 전쟁범죄가 드러났고, 이러한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전후 소련군에 체포된 이온 안토네스쿠는 루마니아 공산정권에 인계되었다. 웃기게도 소련이 점령한 구 루마니아 영토와 우크라이나 점령지의 유대인은 무자비하게 학살했지만 루마니아 국내의 유대인은 살려뒀다. 같은 루마니아 시민이라서가 아니라, 전황이 기울자 연합국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이고 싶어서였다. 물론 이 유대인들도 갖은 수탈을 당해 알거지가 되었고 전후 [[이스라엘]]로 대거 이주, 오늘날은 3천 명밖에 남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